최면의 발전사 (교재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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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8-04-08 12:35 조회272회 댓글0건본문
최면의 역사
최면의 기원은 5천여 년 이전의 역사로 거슬러 올라간다. 주로 의료와 종교 분야에서 이용되어 왔으며
그 흔적을 고대이집트의 조각이나 기원전 그리스 조각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다. 또한 기원전 이집트
에서는 최면으로 많은 기적을 나타내 보였다는 내용이 기록으로 전해지고 있다.
현대적인 의미의 최면은 프랑스 파리에서, 오스트리아의 의사이자 철학박사였던 메스머(Franz
Anton Mesmer1734-1815)에 의해 시작되었다. 메스머의 자기요법(최면요법)은 당시의 의술로는 잘
낫지 않던 환자들이 단기간 내에 치유되는 등의 성과를 올리게 된다. 그러나 그의 이론이 과학적으로
수긍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것으로 낙인이 찍히면서 쇠퇴의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 이후 1840년대에
영국의 제임스 브레이드는 자기이론을 수정하여 “최면은 인공적인 일종의 유사 수면상태”라는 학설
을 발표하는 한편 “자기술”이란 이름도 “최면(Hypnosis)” 이라고 이름을 바꾸게 된다. 당시 외과 수
술에서 최면이 마취수단으로 사용되었지만 마취약의 출현으로 오락물로 전락하여 무대최면이 성행하
게 되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최면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사람들도 나타나게 된다.
프랑스의 시골의사인 리에보가 최면의 혁명적인 테크닉을 개발하고, 이를 낭시대학의 유명한 외과의
사인 베른하임이 배우게 된다. 이 두 사람이 20년간 최면요법으로 3만 명가량의 환자를 치료하자 유
럽 전역에서 의사들이 몰려들었다.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프로이트(1856-1939)도 예외는 아니었다.
독일의 빈에서 성장하면서 생리학자를 꿈꾸던 청년의사 프로이트는 프랑스의 파리로 연수를 떠나는
데, 거기서 최면치료를 목격하고 최면치료자가 되기도 한다. 게다가 최면치료에 열중했지만 정작 최
면에 그다지 뛰어난 재능이 없었던 프로이트는 심리적 분석 과정에서 최면을 배제하게 된다.
최면의 세계적 추이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에 이어 제2차 세계 대전으로 많은 전쟁 신경증 환자가 속출하게 되고, 이에 대한 치료수단으로 최면요법이 가장 적합하다는 판정이 내려지면서 최면이 각광을 받게 된다. 1950년대에 접어들면서 영국과 미국의 가장 권위 있는 의학단체에 의하여 정식으로 최면이 가치를 인정받게 된다.
최면은 WHO(세계보건기구)가 치료법으로서의 가치를 인정하고 있으며, 미국의 하버드대학교 및 여러 대학에서 최면을 정식 필수과목으로 배우게 하고 있다. 하버드대학에는 최면전문클리닉 센터가 개설되어 있으며, 한국의 KBS에서도 보도한 것처럼, 마취제를 사용하지 않고 최면 상태에서 수술을 하는 등 적극적으로 의료 분야에서 최면을 활용하고 있다. 미국 종합병원이 신설한 통증 처리실에는 전속 최면사가 배치되어 최면마취와 통증클리닉을 전담하고 있다. 최면요법에 건강보험이 적용되고 있다는 것은 주목할 만 하다 할 것이다.
위에 언급한 의학적인 최면요법 외에도 최면은 범죄수사에서도 활용되어지고 있는 중이다. 얼마 전 국내 뉴스에도 보도된 것처럼 수년전의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여 사람을 찾아내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하기도 하였다.
***결론***
현대 최면은 미국과 유럽 선진국 의사들이 앞장서서 발전시켜 왔으며,
환자들을 치료하고 수술하는 과정에서,
마취제 대신 최면상태에서 수술을 하는 등 적극적으로 최면을 이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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